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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리뷰, 감상

그리고 또 그리고 만화 1~5권 리뷰

by 김토식 2023. 2. 5.

미대생의 현실을 보여주는 부분
그 유명한 미대생의 진실. 뼈 때리네요...

이번에는 미대 입시를 준비한다면 꼭 한번 봐야 할 그리고, 또 그리고 만화를 리뷰하려고 합니다. 

간략한 줄거리와 감상을 넣은 리뷰, 작가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줄거리 

 

 

일본 미야자키현의 고등학교 3학년 하야시 아키코는 훗날 패션걸 유카, 해파리 공주 등의 인기 만화가가 됩니다. 

하지만 단번에 데뷔한 게 아니라 여타 미대 입시생처럼 화실을 다닌 뒤 미대에 입학하게 되는데,

그때 만났던 은사 히다카 켄조에게 배운 미술 입시와 그 뒤에 일어났던 일들을 다룬 자전 만화가 바로 그리고, 또 그리고입니다.

 

 
그리고, 또 그리고 1
규슈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미술부원으로 그림을 그리는 하야시 아키코. 그녀는 상냥한 고문 선생님께 칭찬만 들어서 자의식 과잉에 미대 입시를 지망하면서도 입시 준비는 하지 않는 태평한 성격의 소유자다. 어느 날 미대를 지망하는 친구가 화실에 다니기로 했다는 말에 아키코도 견학을 가는데, 그곳에서 죽도를 휘두르며 그림을 가르치는 히다카 선생님을 만난다. 너무 무서운 히다카 선생님한테 그림을 배우고 미대에 합격할 수 있을까? 인기 만화가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학창 시절을 그린 자전 만화 『그리고, 또 그리고』 1권.
저자
히가시무라 아키코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2.09.25

 

 

리뷰

 

이 만화는 현재 30대인 작가가 본인 소개를 하면서 자신의 어릴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작됩니다.

그 당시 80~90년대의 일본 만화는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활동하는 시기였습니다.

작가 또한 순정 만화 보기에 푹 빠져서 조금씩 따라 그리며 실력을 늘려갔습니다. 흔히 많은 '그림쟁이'들이 그러하듯이요.

명문 니시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고3이 되었고, 미대 입시를 만만히 보던 작가는 친구에게 따끔한 충고를 듣게 되고 친구가 다니는 화실을 가보자고 권유받게 됩니다.

 

이젤이 석고상을 둘러싸고 있고 학생들은 석고상을 우러러보며 연필을 쉴 새 없이 종이에 스쳐가며 그리는 모습.

이 모습이 저도 정말 낯익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입시 화실은 비슷하겠지만 특히 석고 소묘가 입시에 반영되는 한국, 일본, 중국의 미술 입시 학생들은 거의 자기 학생 때 시절을 사진 찍어놓은 듯한 모습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1~2권 초반은 입시의 피크를 보여줍니다. 작가 말고도 다른 학생의 모습도 같이 나오고 그들의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정말 내가 그 미술학원에 같이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보통 한국에서는 (적어도 제가 아는 한은) 목탄을 입시에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입시 때 목탄을 본격적으로 쓴다고? 조금 놀랐습니다. 검색해 보니 확실히 일본 미대로 유학을 갈 학생들은 목탄 연습을 많이 하네요. 중간중간 작가가 그림 그릴 준비의 가장 첫 번째 하는 일로 목탄을 손질하는 모습, 목탄을 어떻게 쓰는지 다른 학생에게 알려주는 이야기를 보면서 저도 조금 배웠습니다.

 

작가는 기억력이 좋습니다. 사진을 찍듯이 장면을 기억하기 때문에 만화에서도 아주 세세한 소품까지 재현을 잘해놓았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화실 내부나 미대에서 수업하는 모습, 만화를 그릴 때의 장면에서 보이는 펜과 지우개 등의 배치, 레스토랑에서 편집자와 식사를 하는 장면의 배경 등 정말로 방금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내는 모습이 이 만화의 큰 장점입니다. 

입시 때 엄하고 조금 괴팍한 선생님에게 호된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정말 그림 양이 많습니다. 펜선을 보면 어시스턴트에게 맡기지 않고 본인이 그린 분량이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양으로 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좋지 않겠지만, 이 부분은 성의 있고 밀도 있게 그렸다는 부분에서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습니다. 

 

그림에 관련된 이야기만 했다면 그저 그런 만화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이 그리고 또 그리고 에서는 작가의 미성년자 시절만 나오는 게 아니라 대학생,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면서 화실에서도 일하던 때, 만화가로 데뷔한 후 등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그립니다.

사이사이 선생님이 흔들리는 예민한 작가의 멘털을 잡아주며 거칠게 다독이는 모습에서 어쩐지 저 또한 같이 위로를 받았습니다. 미대생 때 그림이 안 그려져서 패닉이 오는 바람에 엎어져 울고 있을 때 선생님이 급히 와주셨다고 합니다.

울고 있는 작가가 그렸던 조잡한 그림은 다 찢어 버리고 그 옛날 그렸던 자화상을 어서 그리라고 채근합니다.

붓을 쥐어주고 팍팍 그리라고 강압적으로 꾸짖습니다. 그 방식이 좋다는 건 아니지만, 결국 작가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술가가 그림을 못 그린다는 건 물고기가 숨 쉬는 방법을 잊었다는 거 아닐까요? 

선생님은 거친 방식으로 심폐소생술을 한 것 이겠죠.

 

1권 마지막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작은 거짓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된 다음에는 그런 거짓말들이 두 배, 세 배로 불어나요. 매일매일 남의 눈치를 보고, 남들은 제 눈치를 보면서 이제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럴 때에 작가는 선생님과 그 하신 말들이 생각난다고.

 

작가는 만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심했던 옛날 일본에서, 혹시나 선생님이 자기를 싫어하지 않을지 고민하곤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저 '그려라'라는 말을 합니다. 

 

그려라. 

그려. 

계속 그려야 한다. 

 

이것은 그림을 그리는, 넓게는 디자인과 공예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말일 것이라 느꼈습니다.

오직, 그냥, 그림을, 그려라.

이 말은 정말이지 가장 간단하면서도 미술인들의 심장을 관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그리고 또 그리고 인 것 같습니다. 실제 원제는 사각사각에 가까운 단어지만 번역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상 주고 싶네요.

 

어렸던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잘된 작품으로 본인과 미술 지망생에 대한 팩트 폭력이 난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합리화가 심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저는 미술을 사랑하고, 미술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한 번쯤 읽어도 좋을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이야기

 

1975년생 히가시무라 아키코 (본명 하야시 아키코)는 1999년 잡지 '부케'에서 데뷔했습니다. 

패션걸 유카, 엄마는 텐파리스트, 해파리 공주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강동원을 좋아해서 한국에도 자주 왔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에서 연재했던 경험도 있으니 관심 있으시면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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